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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서한”에 대한 노먼 가이슬러와 론 로우즈의 변증과 ‘크리스천 리서치 저널’(Christian Research Journal)의 지방 교회들 재평가에 대한 그들의 비평에 답변함 [영어 사이트] 이 글을 PDF 로도 읽을 수 있음 그러나 신성한 본성에 관하여, 우리는 아들께서 아버지와 공동으로 함께 일하지 않으시는 채로 아버지 홀로만 어떤 일을 하신다거나, 아들께서 성령과 동떨어져 특별한 어떤 행동을 하신다 는 식으로 배우지는 […]

신성한 삼일성의 셋이 함께 일하신다고 주장하는 학자들

“공개서한”에 대한 노먼 가이슬러와 론 로우즈의 변증과 ‘크리스천 리서치 저널’(Christian Research Journal)의 지방 교회들 재평가에 대한 그들의 비평에 답변함 [영어 사이트]

이 글을 PDF 로도 읽을 수 있음

그러나 신성한 본성에 관하여, 우리는 아들께서 아버지와 공동으로 함께 일하지 않으시는 채로 아버지 홀로만 어떤 일을 하신다거나, 아들께서 성령과 동떨어져 특별한 어떤 행동을 하신다 는 식으로 배우지는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피조물에 미치는 모든 행동들은––우리의 다양한 이해에 따라 서로 다른 명칭이 부여되기도 하지만––아버지로부터 기원하고, 아들을 통하여 나아오며, 성령 안에서 완성된다.
Gregory of Nyssa, “On Not Three Gods,”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Series 2, Volume 5, Philip Schaff and Henry Wace, eds. (Grand Rapids, MI: Eerdmans, 1892, 1979), p. 334

아버지와 아들의 의지는 하나이고, 그분들은 분리되지 않게 일하신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아들께서 보내심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는 육체 되심과 처녀 탄생도 아들과 아버지의 분리될 수 없는 공동의 한 행위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이해되게끔 하라. 또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는데” 라고 분명하게 말해진 것으로 보아 그 일에서 틀림없이 성령도 배제되지 않으셨다는 것도 이해되게끔 하라.
Augustine, “On the Holy Trinity,”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Series I, Volume 3, Philip Schaff, ed. (Grand Rapids, MI: Eerdmans, 1887, 1978), p. 41

참으로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께서 처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께서 태어나신 것이긴 하지만 이 탄생은 아버지와 아들 모두의 일하심이었다. 참으로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께서 고난 받으셨지만, 아들의 고난은 아버지와 아들 모두의 일하심이었다.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께서 다시 사셨지만, 아들의 부활은 아버지와 아들 모두의 일하심이었다.
Augustine,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Series I, Volume 6, “Sermon II: Of the words of St. Matthew’s Gospel, Chap. iii. 13, ‘Then Jesus cometh from Galilee to the Jordan unto John, to be baptized of him.’ Concerning the Trinity.”, Philip Schaff, ed. (Grand Rapids, MI: Eerdmans, 1887, 1979), p. 261

내가 이 말을 할 때, 그분들이 운행하실 때 한 인격이 다른 인격으로 승계된다거나, 한 분이 끝난 곳에서 어떤 일을 이양하면, 다른 분이 그것을 받아서 계속 수행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신성한 일마다 그리고 그 신성한 일의 각 부분은 하나님의 일, 다시 말해서 분리되지 않고 나눠지지 않으시는 전체 삼일성의 일이기 때문이다.
John Owen, Pneumatologia, p. 94, available at www.ccel.org/ccel/ owen/pneum.i.v.iv.html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는 삼일성의 세 구성원들께서 상호 관통하시는 것일 뿐 아니라, 셋 모두가 하나님의 모든 일들에 관여하심을 의미한다. 어떤 특정한 일들은 삼일성의 셋 중 어느 한 분에게 주로 귀속되는 일이거나 그 한 분이 중심적인 위치에서 이루시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 한 분만이 그 일에 참여하시는 것은 아니다. 다른 두 분도 어느 정도까지는 그 일에 관여하신다. 따라서 구속은 명백하게 육체 되신 아들의 일이지만, 아버지와 성령 또한 관여하신다.
Millard J. Erickson, God in Three Persons: A Contemporary Interpretation of the Trinity (Grand Rapids, MI: Baker Books, 1995), p. 235

성경이 어떤 일들을 특별히 아버지에게 귀속시키고, 다른 것들은 특별히 아들에게 귀속시키며, 또 다른 것들은 특별히 성령에게 귀속시키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그렇게 각 인격에 특정 일을 귀속시키는 배경에는 신격 안의 참된 구별이 전제되어 있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위격들 중 어느 한 분에게 귀속된 일도 전적으로 한 분 하나님의 일이다.
Cornelius Van Til, An Introduction to Systematic Theology (Philadelphia, PA: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1961), p. 228

아버지와 부활하신 주님과 성령의 삶 속에서 각자의 활동들을 구별해 낼 수가 없다고 믿는 이들이 불평할 때, 그것은 가끔씩 신 구약 성경 모두에서 근본적인 교리인 하나님의 단일성(unity)을 손상시키는 방식으로 문구화되어 표현된다. 비록 신격의 위격들이 많은 활동들 가운데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활동하더라도, 삼일성의 위격들 중 어느 한 분의 모든 활동은 하나님의 한 활동이다. 모든 믿을 만한 영적인 체험은 유일한 한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다.
Carl F. H. Henry, God, Revelation and Authority, VI:2 (Waco, TX: Word Books, 1983), p. 400

그러나 공통의 본질로 인하여, 한 신성한 위격이 수행하신 것은 셋 각각이 수행하신 것이라고 말해질 수 있겠다(페리코레시스의 원칙). 따라서, 아들도 창조하시고(고전8:6, 골1:16), 그 영도 창조 하신다(욥33:4, 시33:6 참조). 아버지도 구속하시고(고후5:18-19, 엡2:4-5, 8)그 영도 구속하신다(롬8:4, 딛3:5). 또한 아버지도 거룩케하시고(엡1:3-4, 살전 5:23), 아들도 거룩하게 하신다(엡4:15-16, 5:25-27).
Bruce Demarest and Gordon Lewis, Integrative Theology, vol. 1 (Grand Rapids, MI: Zondervan, 1987), p. 267

헬라 교부들이 지지하였던 고대의 페리코레시스 교리는 신격을 구성하는 위격들 간의 영원한 상호작용을 나타낸다. 그러한 교리에 따르면, 삼일성의 위격들 사이에는 완전한 상호침투가 있는데, 그 결과 각각의 위격은 다른 위격들의 활동과 밀접하게 얽혀 계신다. 따라서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것을 아들과 그영 또한 바라신다. 아들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아버지와 그 영 또한 사랑하신다. 그리고.
William Lane Craig, “Divine Timelessness and Personhood,” International Journal for Philosophy and Religion, 43:2, April 1998, p. 122

삼일성의 세 위격들이 동일하게 똑같은 숫적인 실체(substance)와 본질(essence)을 소유 하시고, 그 속성들은 본체 또는 본질 안에 내재되어 있고 본체 또는 본질과 분리될 수 없으므로, 신성한 속성들 모두는 세 위격들 각자에 의해 마찬가지로 소유되셔야 하고 또한 세 위격들은 본질적으로 동체이시고, 동등하시며, 동일하게 영원하셔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각각이 참으로 하나님이시며, 동일한 능력을 행사하시고, 신성한 영광에 동일하게 참여하시며, 동일한 경배를 받으실 자격이 있으시다. 주님의 기도의 예에서처럼, 우리의 기도 안에서 ‘아버지’라는 단어가 사용될 때, 그것은 배타적으로 삼일성의 첫번 째 위격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 하나님인 세 위격들을 가리킨다.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Loraine Boettner, Studies in Theology (Phillipsburg, NJ: The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mpany, 1947), p. 107

이 장(章)은, 구속의 ‘성공’이 신인(神人)양성의 인격, 즉 육체되심 안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이시자 전적으로 사람이신 분인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달려있음을 어느 정도 주장할 것이다. 구속을 하나님-사람이 성취한 일로 보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거기에 수반되어야 하는 것은 구속의 성취가 아버지와 그 영께서 아들과 협력하여 이루시는 일에도 그만큼 의존한다는 깨달음이다.
Bruce Ware, “Christ’s Atonement: A Work of the Trinity,” Jesus in Trinitarian Perspective, Fred Sanders and Klaus Issler, eds. (Nashville, TN: B&H Publishing Group, 2007), p. 156

신성한 본질의 전능한 힘으로 수행되는 모든 행동에는 신성한 세 위격 모두가 필수적으로 참여하시는데, 이는 그분들 각자가 그 신성한 본질을 완전히 소유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물질적인 창조를 하실 때 취하신 어떤 물리적인 행동도 신성한 세 위격 모두의 행동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Michael L. Chiavone, The One God: A Critically Developed Evangelical Doctrine of Trinitarian Unity (Eugene, OR: Pickwick Publications, 2009), p. 214

저명한 스코틀란드 개혁 신학자인 토마스 F. 토렌스는 그의 책에서 발췌한 아래 내용에서 보듯이 상호 내재(혹은 상호적인 거함)에 근거한 신성한 삼일성의 셋의 공동작업을 특별히 강조한다:

물론 육체가 되신 분은 신격이나 하나님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니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은 아버지 혹은 그 영이 아니시라 아버지의 존재로부터 그리고 아버지와 완전히 동일한 본질을 지니고서(homoousios)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신격의 모든 충만이 그분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분리되지 않는 신격 전체가 그리스도의 육체되신 생명과 일에 참여하신 것으로 인식되어야만 한다t.
Thomas F. Torrance, The Christian Doctrine of God: One Being Three Persons (London: T&T Clark, 1996), p. 108

하나님의 존재와 활동이 완전히 상호 관통하므로, 우리는 그분의 존재와 그분의 활동을 분리된 것이 아니라 ‘활동 안에 계신 하나의 존재와 존재 안에 있는 하나의 활동’(one Being-in-Activity and one Activity-in-Being)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창조이든 구속이든 매번의 신성한 운행에서 항상 함께 행동하시지만, 그분들의 활동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서 그분들의 인격의 고유성과 타자성(他者性)을 반영하여 늘 각자의 행위의 구별성이 유지되는 방식으로 수행된다. 이것을 ‘신성한 삼일성의 상호 거함에 따른 공동 활동’이라고 부를 수 있다.

…물론 거기에 근본적인 구별이 있었다. 왜냐하면 비록 출생부터 죽음과 부활까지 예수님의 전 일생과 활동이 아버지와 그영의 임재 및 공동 활동과 동떨어져서 발생한 것은 아니었더라도, 육체가 되시고, 처녀 마리아에게서 나시며,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무덤에서.
위 책 197-198

…따라서 구속(救贖)은 하나님의 존재 안에서의 그분의 행위, 하나님의 행위 안에 있는 그분의 존재로 간주되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 아버지이셨다, 고 말하는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은 아버지로부터 구별됨 안에 계신 아들이셨기 때문이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십자가 위에서의 그리스도의 고난은 단지 인간으로서의 고난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고난인 동시에 신성이 겪는 고난이기도 했다는 점이고, 사실상 하나님 자신, 즉 구속 하는 행위 안에서 그분의 존재가 겪은 고난이자 그분께서 바로 하나님으로서의 자신의 존재 안에서 겪으신 수난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점이다.…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개별적으로 서로 구별되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하나에 속하셨으며 하나님 안에서 서로 함께 계시는 동일 존재이시며, 그분들의 행위는 한 신격의 불가분성 안에서 상호 관통한다.
Thomas F. Torrance, The Mediation of Christ (Colorado Springs, CO: Helmers & Howard, 1992), p. 113

육체가 되셨고 십자가 위에서 고난받으신 분은 당연히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이셨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위격의 구별은 그분들의 존재의 단일성 혹은 그분들의 활동의 단일성 안에 어떤 분열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존재와 행동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위 책 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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